살인자는 인간이 아니다. 02. 저주
아카샤의 두려움과 비통에 젖은 목소리가 여자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녀들이 내지르는 비명에 바이 위탕은 미간을 찡그렸다.
"관련 없는 자들은 다 나가."
그리고 입구에 서 있는 곡언명과 다른 경호원에게 지시했다.
"너희가 우선 현장을 지키도록 해."
두 경호원은 일사불란하게 사람들을 밖으로 안내했다.
아카샤라는 점쟁이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쉰 목소리로 계속 외치고 있었다.
"저주를 믿지 않고 악마를 믿지 않으면…… 너희 모두 악마의 벌을 받으리라."
바이 위탕은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공손과 쟌 자오가 금고 주위를 둘러싼 채 사체를 관찰하고 있었다.
미간을 찡그린 채 한참을 관찰하던 공손이 고개를 들고 바이 위탕을 바라보았다.
"돌아가서 사체를 꺼내야 사인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바이 위탕은 잠시 입을 다문 채 생각했다.
이윽고 그가 물었다.
"사지가 찢겨나간 겁니까?"
(원문:: "他是被肢解放进去的?"肢解 :: 예전에 중국에서 행하였던 가혹한 형벌의 하나. 사람의 팔과 다리를 각각 찢어 내
는 형벌)
공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접은 거야."
"접어……."
바이 위탕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을 접었다는 겁니까?"
"솔직히 말해줄까?"
공손이 빙글 웃었다.
"이건 확실히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은 아니야."
말을 마치고 공손은 손을 씻기 위해 전시실을 나갔다.
바이 위탕은 금고 속 사체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쟌 자오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양아, 뭐라도 있어? 뭘 그렇게 열심히 봐?!"
쟌 자오는 잠시 생각했다.
"바이야, 너 폐차 처리할 때 유압 프레스기 쓰는 거 봤어?"
바이 위탕은 고개를 끄덕였다.
"봤지~~ 네 면의 강판에 하나가 더해지면 사람을 누를 수도 있고. 문제는 왜 이런 짓을 했냐는 거 아니야?"
"두 가지 심리가 있어."
쟌 자오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가장 단순한 심리는 범인이 사람들의 주의를 상자 속 시신의 저주에 쏠리게 하려는 거야."
"두 번째는?"
바이 위탕이 재촉했다.
"단순한 심리가 아니면 뭔데?"
"음~~~ 그건 그의 행동을 분석해보면 돼."
쟌 자오가 말했다.
"이 범인의 심리는 매우 치밀하고 자신감에 차 있으며 심지어 오만하기까지 해."
"그렇군."
바이 위탕이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이 만든 이 밀실 현장을 보면, 거기에 이 녀석이 상당히 재미없는 녀석이라는 말도 넣어야겠군."
쟌 자오는 천천히 테이블 주위를 돌아다니며 여러 각도에서 금고를 살폈다.
"그는 이걸 완성한 뒤, 이렇게 주위를 한 바퀴 돌았을 거야. 마치 자신의 걸작을 감상하듯이 말이야. ……피해자의 입에 있던 핸드폰이 바로 그 증거야. 그는 모든 피해자를 비웃고, 모든 사람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아. 그가 이걸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건……"
"내가 신이다……"
바이 위탕이 말을 이어받았다.
"사람이 아니다……그렇지?!"
쟌 자오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또다시 목숨 걸고 장난치는 변태가 나타났다, 이거군."
바이 위탕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때 입구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이야~ 정말 무서운데. 형님이 이걸 사신다는 건가??"
바이 위탕과 쟌 자오는 고개를 돌렸다.
문 앞에는 가죽가방을 든 쌍둥이가 서 있었다.
"어쩌냐, 네 놈들은 이제 필요 없는데!"
바이 위탕이 가죽가방을 보면서 소리쳤다.
"돈 받을 사람도, 물건도 모두…… 사라졌거든!"
"그럼……, 형님은?"
조혜가 사방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 소리에 다른 사람들도 사방을 둘러보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문 앞에 서 있었는데……. 어디 간 거지?
화장실 안.
공손은 수도꼭지를 틀어 흐르는 물에 손을 씻었다. ……법의로 여러 해 동안 지내 온 습관인지, 그는 먼저 장갑을 낀 채 손을 씻어 장갑을 깨끗하게 빤 뒤, 장갑을 벗어 손을 씻곤 했다.
쏟아져 내리는 투명한 물줄기에 장갑 낀 두 손을 갖다 댄 채 공손은 조금 전 보았던 사체의 괴상한 복장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등 뒤가 따뜻해졌다. ……고개를 들자 언제 따라온 건지 바이 유탕이 등 뒤에 서 있었다. 의아한 눈으로 거울 속의 바이 유탕을 보며 물었다.
"당신은 왜 왔어요?"
그러면서 공손은 장갑 낀 손을 비볐다.
바이 유탕은 말없이 미소를 짓더니 살짝 고개를 숙여 공손의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이 조금 전 검시하는 모습이 정말 섹시하더군요."
그러면서 두 손을 앞으로 돌려 공손의 가느다란 허리를 껴안았다.
"당신……."
공손은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제발 공사 구분 좀……아……."
바이 유탕이 기다린 게 바로 이런 기회였다. 그는 고개를 숙여 공손의 입술을 한입에 머금고 진하게 키스했다.
긴 입맞춤을 끝내고 바이 유탕은 한 손으로 공손의 허리를 감싼 채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턱을 올려 자신과 눈을 맞췄다.
"어쩌지……."
그가 난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공손은 어리둥절했다. 그가 가볍게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하지만 바이 유탕은 말이 없었다. 대신 그는 공손의 귓바퀴를 슬쩍 핥더니 귀속으로 혀를 집어넣어 내부를 훑었다.
품 안에서 가느다란 떨림이 느껴졌다.
공손이 몸을 뒤틀며 도망치려는 듯 보이자 허리를 더욱 꽉 껴안았다.
"어쩌죠?"
바이 유탕이 다시 공손의 귓가에 속삭였다.
"지금……당신이 위탕에게 웃어주는 것조차……질투가 납니다."
공손은 경악했다. 스웨터 사이로 바이 유탕의 손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게 무슨 헛소리에요?"
공손은 양손에 물에 젖은 장갑을 끼고 있어 바이 유탕의 행동을 제지할 수가 없었다.
그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빨리 손 놔요!"
하지만 바이 유탕은 전혀 들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그는 한 손을 빼내어 공손의 손에서 장갑을 벗겨낸 뒤, 자신을 손을 찬물에 살짝 적셨다.
"당신을 가둬두고 싶습니다."
바이 유탕이 다시 공손의 등을 껴안으며 그의 어깨에 턱을 기댔다.
"아무한테도 당신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공손은 살짝 고개를 돌려 바이 유탕에게 애교를 부리듯 그의 머리에 가볍게 뺨을 비볐다.
그의 애교에 바이 유탕은 멍해졌다. 그러다 순간 번뜩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뒤로 한 발 물러섰다.
다행히 머리가 젖는 것은 피했으나 공손이 양손 가득 뿌린 물에 의해 양복 앞자락이 젖고 말았다.
어이없는 눈으로 양복의 물기를 털어내던 바이 유탕은 공손이 웃음을 날리며 밖으로 도망치자 더는 생각할 것도 없이 재빨리 뒤를 쫓아가 그의 허리를 붙잡았다.
"앗!"
공손이 비명을 내질렀다.
바이 유탕은 공손을 두 팔로 안아 들고 세면대로 돌아와 그 위에 공손을 앉힌 채 허리가 꺾일 정도로 밀어붙이며 저돌적으로 키스했다.
두 사람이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는 S.C.I. 팀원들이 모두 도착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공손은 현장 감식과 증거 채취가 끝나자 금고를 S.C.I. 법의실로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다.
살짝 상기된 그의 얼굴에서 그가 금고 안의 사체를 빼내기 위해 애썼음을 알 수 있었다.
현장이 일단락 마무리되어갈 즈음, 입구에서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용을 듣자 하니 카를로스의 비서 여연이 곡언명과 또 다른 경호원을 붙잡고 책임지라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당신들, 당신들 말고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그렇게 외친 여연이 곁에 있던 형사에게 말했다.
"저 사람들을 잡아요! 어서요! 저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다구요!!"
"하지만……."
쟌 자오가 끼어들었다.
"열쇠는 당신이 갖고 있었잖아요. ……안 그래요?"
"나는……."
여연은 곡언명과 다른 경호원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넋을 잃은 채 중얼거렸다.
"저주는 아닐 거야. ……그건 그냥 전설일 뿐이라고……. 그게 진짜 일리 없어……."
"무슨 전설이요?"
그녀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판단한 쟌 자오는 차분히 이야기를 듣기 위해 홀로 그녀를 휴게실로 데려갔다.
한편, 밖에서는 바이 위탕과 형사들이 박물관에 있던 사람들의 신분 조사를 끝냈다.
이제 남은 건 곡언명과 또 다른 - 풍걸(冯杰)이라는 이름의 경호원뿐이었다.
바이 위탕이 유감스럽다는 듯이 곡언명의 어깨를 두드렸다.
"두 사람한테는 자세하게 진술을 받아야 하니 우선 경찰청으로 돌아가지."
말을 마친 그가 왕조와 장용을 불러 그들을 데리고 먼저 경찰청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박물관을 나서기 직전, 곡언명이 다소 복잡해 보이는 얼굴로 휴게실을 돌아보았다.
"왜 그래?"
바이 위탕이 물었다.
"아, 그게……."
곡언명은 잠시 주저했다.
"대장, 오늘 아침에 카를로스 선생님과 여연 씨가 시신을 상자에 넣어 저기로 들어갔는데……."
그가 특별 전시실 문을 가리켰다.
"두 사람이 안에서 심하게 다투는 걸 들었어요."
"맞아!" 풍걸이 말했다.
"저도 들었어요!"
"뭐라고 싸웠는데?" 바이 위탕이 물었다.
"문이 닫혀 있어서 잘 듣지는 못했지만, 저주라는 단어를 계속 언급했어요."
곡언명이 말했다.
"맞아!" 풍걸이 말을 이어받았다.
"여연 씨가 소리 지르면서 말해서 그게 가장 잘 들렸어요."
때마침 쟌 자오와 여연이 휴게실 안에서 나왔다.
왕조와 장용은 여연과 두 경호원을 데리고 경찰청으로 돌아갔다.
"고양아, 어때?"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심각한 얼굴의 쟌 자오를 보자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쟌 자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걸으면서 얘기하자."
쟌 자오는 박물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게?"
바이 위탕이 제자리에 선 채 물었다. 그는 박물관의 감시 카메라를 확인하고 싶었다.
"카를로스 집!" 그렇게 외치고 쟌 자오가 먼저 박물관 밖으로 나갔다.
바이 위탕은 마한과 조호에게 감시 카메라를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린 뒤, 쟌 자오를 뒤쫓아 박물관을 나와 외곽에 있는 카를로스의 별장으로 차를 몰았다.
"아까 전에, 여연 씨가 재밌는 얘기를 했어."
쟌 자오가 검지로 턱을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상자 속 시신의 저주에 관한 거야."
"말해 봐."
바이 위탕도 상당히 흥미가 동한 얼굴이었다.
"이 상자 속 시신의 내력이 특이해."
쟌 자오가 말했다.
"이건 투치족의 마지막 상자 속 시신이야."
"마지막?"
바이 위탕은 어리둥절했다.
"그 뒤로는 안 한다는 거야?"
쟌 자오는 고개를 저었다.
"투치족은 전멸했어. 아니, 전멸 당했지!"
바이 위탕의 눈이 커졌다.
"전멸당해? 너 지금…… 그들이 자연스럽게 소멸한 게 아니라는 거야?"
"응."
쟌 자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투치족 사람들은 동남아시아의 한 작은 섬의 정글에서 살고 있었는데 대략 백여 년 전에 네덜란드 상선 한 척이 그 섬에
불시착한 일이 있었어. 투치족 사람들은 부상당한 그들을 구하고, 따뜻하게 대접했지.
……하지만 선원들의 투치족의 상자 속 시신에 대한 공예에 욕심이 생겼고, 끝내 투치족 사람들을 모두 몰살시키고 이 귀중한 상자 속 시신을 빼앗으려고 했어. 결국……유일하게 살아남은 투치족 족장이 모든 상자와 시신을 태워버렸지."
"그럼……, 이번에 전시된 상자 속 시신은?"
바이 위탕이 물었다.
"……그건 족장의……."
쟌 자오는 말을 잇지 못했다.
"…………"
바이 위탕은 상당히 놀란 기색이었다.
"그럼 네 말은……."
쟌 자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덜란드 사람들 중 몇몇은 너무 분한 나머지 화가 나서……. 그들도 섬에 머무는 동안 상자 속 시신을 만드는 것을 봤기 때문에, 그들이 족장을 산 채로 상자 속 시신으로 만들어 버렸대."
쟌 자오의 말이 끝나자 바이 위탕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래서 그 시신의 표정이 그렇게 고통스럽고 원망 가득했구나."
"족장은 죽기 직전, 투치족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주문을 걸었는데 그게…… 그 몇몇의 네덜란드인들과 그들의 후손들을 저주하는 거였나 봐."
쟌 자오가 말했다.
"여연 씨의 말에 따르면, 카를로스 씨는 한 네덜란드 노인에게서 이 상자를 받았다고 했어."
"그 노인이 그 몇몇의 네덜란드인들 중 한 명의 후손이라는 거야?" 바이 위탕이 물었다.
"그 뒤에는? 저주가 들어맞았어?"
"……모두 죽었대."
쟌 자오가 말했다.
"카를로스 씨도 최근 20년을 함께한 부인을 잃었고…… 막내아들도 갑자기 정신병에 걸리자 그 저주를 믿기 시작했나 봐. 그래서 빨리 손을 떼기 위해 사람을 찾고 있었대."
바이 위탕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여연 씨가 그와 싸운 건 아마도 그게 팔리면 저주가 죄 없는 사람에게 돌아갈까 봐 두려워서 그런 거군."
"후……."
쟌 자오는 한숨을 내쉬고 바이 위탕을 돌아보았다.
"형이 사지 못한 건 오히려 잘 된 거야."
"너 설마 저주를 믿는 거야?"
바이 위탕이 웃었다.
"고양아, 너 이런 전설 같은 거 안 믿지 않았어?"
쟌 자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지금도 안 믿어. 악마라는 건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거니까."
그가 바이 위탕을 슬쩍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마음속에 악마가 있는 사람에게 찍히는 건, 악마에게 찍히는 거나 다름없지."
"그래, 맞아."
바이 위탕은 차를 세웠다. 차창 밖으로 카를로스의 별장이 보였다.
바이 위탕은 몸을 돌려 쟌 자오의 턱을 쥐고 자신 쪽으로 돌렸다.
"네가 형이랑 공 선생에게 관심 갖는 건 좋아. ……하지만……."
그가 쟌 자오의 뺨에 살짝 입맞춤했다.
"너무 티 내지는 마. 나 식초 먹게 될지도 몰라."
쟌 자오는 바이 위탕의 어깨를 힘껏 밀어젖혔다.
"미쳤어! 넌 공사 구분도 못해?! 벌건 대낮에……."
"꺄아아아아아아."
두 사람이 서로에게 애정 어린 욕설을 날리던 그때,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이 별장에서 들려왔다.
"……지금……."
"……응!"
"그 소리……."
"……분명해!"
"……안에서……."
"……맞아!"
두 사람은 재빨리 차에서 내려 별장 문 앞까지 돌진했다. 함부로 들어오는 것을 막겠다는 듯 철문이 우뚝 솟아 있었다.
안에서는 아까보다 저 처절한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바이 위탕은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빠르게 앞으로 달려가 점프하는 동시에 벽을 딛고 철문 위로 단숨에 올라가 훌쩍 벽을 넘었다.
그가 철문을 열자 쟌 자오도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전속력으로 달렸다.
화원을 지나 끊임없이 비명이 들려오고 있는 하얀 중세풍의 별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거실에서는 가정부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무릎을 꿇은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피 범벅된 동물의 사체가 여러 구 놓여 있었다.
원래는 하얗고 솜털 같았을 강아지가 지금은 피범벅이 되어 죽어 있었다.
"헤헤헤헤………."
가벼운 웃음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2층 난간 팔걸이에 한 소년이 앉아 있었다.
13,4살 정도의 나이대로 보이는 소년은 갈색의 짧은 곱슬머리에 창백한 피부, 흰색 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검은색 난간 위에 앉아 한가롭게 다리를 흔들고 있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했다.
왼손에 피 묻은 칼을, 오른손에는 피범벅이 된 강아지의 머리를 들고, 얼굴과 옷을 모두 피로 물들인 채 소년은 헤헤하고 웃고 있었다. 그러다 가끔씩 괴이한 소리를 내며 흥얼거리기도 했다.
"OCD……."
쟌 자오가 소년을 응시한 채 중얼거렸다.
쟌 자오와 같이 소년을 바라보고 있던 바이 위탕이 그 소리에 놀라 쟌 자오를 돌아보았다.
"OCD? 강박증?!"
쟌 자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섯 번째 방의 문 앞에 앉아 있고, 다섯 번째 난간에 앉아 단추는 다섯 개만 채우고 있어. 그리고 다섯 번 다리를 바꿀 때마다 다섯 글자를 흥얼거리고…… 동물의 사체는 다섯 토막으로 나눴어."
"어떻게 내려오게 할 수는 없을까…… 사람이 다치지 않고 말이야."
바이 위탕이 물음에 쟌 자오는 잠시 생각했다.
이윽고 그가 씩 웃으며 바이 위탕과 눈을 맞췄다.
"문제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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