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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공일치/S.C.I. -Holding

[한글 번역] S.C.I.미안집 원작 1부 47화

by hyuny07 2019. 4. 20.

마법 살인범 02 돌아오다.

시 도서관의 책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백치는 책장 사이를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도서관을 몇 바퀴씩 돌며 책을 찾은 결과, 대출 창구로 향하는 그의 가슴에는 책이 한가득 안겨 있었다.

 

"전부 대출하시나요?"

 

대출 창구 직원은 탑처럼 쌓인 책을 휘둥그런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리고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출 권수는 정해져 있어요."하고 덧붙이더니 그것도 모르냐는 듯 이상한 눈으로 백치를

흘렸다.

 

백치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허둥지둥 경찰 수첩을 꺼내 보였다.

 

"빌리려는 게 아니고 경찰 수사 참고용이에요. 다시 돌려드릴게요."

 

직원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경찰 수첩과 백치를 번갈아 보았다.

 

자신 앞에 있는 사람과 경찰이라는 두 글자가 도저히 매치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번갈아 본 끝에 직원은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책을 등록해 놓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 등록이 끝나면 이쪽에서 경찰청으로 보내드리죠."

 

"……, 좋아요. 감사합니다."

 

백치는 꾸벅 인사하고 몸을 돌렸다.

 

그런 그에게 입구에 놓여 있는 낡은 서랍장이 보였다. 호기심이 동한 백치는 서랍장으로 다가갔다.

 

서랍장은 일종의 옛날 자료를 모아놓은 곳으로 알파벳순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슬쩍 열어본 서랍 안에는 예상외로 많은 양의 파일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파일의 겉면에는 자료의 종류, 명칭, 그리고 위치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백치는 '신문'이라고 라벨이 붙은 서랍장을 열었다.

 

책은 모두 컴퓨터를 사용하여 분류 관리되고 있었지만, 신문은 많아서 인지 2년 정도의 기록뿐이었다.

 

기록되지 못한 오래된 신문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난 20년간의 사건을 모두 확인해야 했던 백치는 먼저 파일 하나를 꺼내 펼쳐보았다.

 

그 순간,

 

"어이!"

 

느닷없이 뒤에서 어깨를 툭 치며 부르는 소리에 백치는 어깨를 움츠렸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인물의 얼굴을 확인하는 동시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자신을 보며 반가운 듯 미소 짓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오늘 아침 비행기에서 만난 조정이었다.

 

짜증이 치밀었지만 더 이상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깨끗이 무시했다.

 

백치는 마치 아무것도 못 본 듯한 얼굴로 다시 고개를 돌려 파일을 뒤적였다.

 

조정은 당혹스러웠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무시당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색한 얼굴로 미소를 머금은 채 조정은 백치 쪽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뭘 찾길래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도서관에 온 거야?"

 

그러나 그의 미소에도 백치는 방해받은 게 불쾌한 눈치였다.

 

 

그는 조정을 노려보며 차갑게 대꾸했다.

 

"당신이랑은 상관없어!"

 

"잠깐!"

 

조정은 다시 고개를 돌리려는 백치를 불러 세우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내가 너한테 잘못한 거라도 있어? 왜 그렇게 나를 미워하는 거야?"

 

"사기꾼!"

 

백치는 조정의 시선을 피하면서 슬쩍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확연히 자신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모습에 조정은 못마땅한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한참이나 백치를 주시하던 조정이 갑자기 "!"하고 외치며 허공을 가리켰다.

 

백치는 본능적으로 조정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뒤에서 조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 하고 웃음을 터트린 조정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좋은 이름이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백치는 경악했다.

 

도대체 언제 빼간 건지 자신에게 있어야할 경찰 수첩이 조정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이다.

 

"빨리……이리 줘!"

 

황급히 수첩을 향해 손을 뻗어봤지만, 조정이 한발 빠르게 손을 뒤로 빼는 바람에 허공에 손을 허우적거린 꼴이 되었다.

 

"S.C.I.~~ ??"

 

"내놔!"

 

가까스로 경찰 수첩을 빼앗은 백치는 수첩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몸을 돌렸다.

 

"?? K시에서 태어났어?? 나도 어렸을 때 K시에서 살았는데."

 

깜짝 놀란 백치가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자신의 지갑이 조정의 손에 들려 있…….

 

"당장 내놔! 당신 체포할 거야!"

 

화가 난 백치는 지갑을 빼앗아 들고 조정을 노려보았다. 조정은 한발 물러섰다.

 

"ok! 그럼 천천히 하라구. 나는 먼저 갈게. ……나중에 봐."

 

그러면서 조정은 몸을 돌렸다. 도서관 입구로 걸어가는 그의 손가락에 작은 열쇠 꾸러미 하나가 걸려있었다.

 

동글동글한 새끼 오리 장식이 달린 그것은—— 백치꺼~

 

오후 5시경,

 

도서관에서 빌려온 두툼한 신문 한 뭉치를 안고 가까스로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온 백치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쇠가 없어??

 

신문을 바닥에 내려놓고 위아래 주머니를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 갔는지 열쇠는 안 보였다.

 

……

 

오늘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

 

누가 그때 문이 열릴 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왔어? 왜 이렇게 늦었어?"

 

백치의 집에서 문을 열고 나와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조정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 사과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공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

 

"…………."

 

너무 놀란 나머지 백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뒤, 백치는 씩씩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가 조정에게 따져 물었다.

 

"당신이 왜 우리 집에 있어?"

 

조정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백치에게 열쇠 꾸러미를 던졌다.

 

"~~ 그게 말이지. 내가 방금 열쇠를 주워서 주인에게 돌려줄까 싶었는데, 글쎄 그게 우연히도 니꺼 더라고~"

 

"당신…… 내 집은 어떻게 안 거야?"

 

백치는 열쇠를 주머니에 넣으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조정을 노려보았다.

 

"아아~~"

 

조정은 싱긋 웃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열쇠가 말해준 거야. 나한테 마력이 있다고 했잖아."

 

백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며 매몰차게 소리쳤다.

 

"사기꾼! 당장 나가!"

 

그러나 조정은 백치의 외침은 깡그리 무시한 채, 마치 제집인양 태연스럽게 소파에 앉아 사과를 베어 먹으며 아까서부터

손에 들고 있던 공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 공책이 어딘가 낯이 익었다.

 

백치는 설마 하는 마음에 물었다.

 

"…… 뭐 보는 거야?"

 

"~~ 네 일기장."

 

아주 당당하게 대답한 조정은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너 진짜 대단하다."

 

"……~~~~~"

 

백치는 조정에게 달려들며 손을 뻗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일기를 볼 수 있냐구!!"

 

조정은 재빨리 소파에서 일어나 백치의 공격을 피했다.

 

"네가 왜 그렇게 나를 싫어하는지 이제야 알아야겠어."

 

"이유 따위는 없어!! 내놓으라고!!"

 

백치는 조정을 쫓아가 공책으로 손을 뻗었다.

 

"그나저나 네 어린 시절은 정말 비참하던데?! 어떻게 남한테 괴롭힘만 당하고 살았냐?"

 

조정은 백치의 손을 피하며 덧붙였다.

 

"살면서 너보다 더 열등감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어……."

 

그 말에 달려들던 백치가 갑자기 멈춰 섰다.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이 지나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자 조정이 백치의 곁

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어이! 왜 그래?"

 

조정은 고개를 숙여 백치의 얼굴을 들여다보기 위해 애썼다.

 

얼마 뒤 백치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는 현관문으로 걸어가 입구에 놓아뒀던 신문 뭉치를 들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작은 탁자 위에 신문을 올려놓은 백치는 그 앞에 자리 잡고 앉아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신문을 뒤적거리며 열심히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뭐야?"

 

조정은 백치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

 

"화났어?"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백치는 계속 신문을 뒤적거렸다.

 

", 너 줄게."

 

조정은 탁자 위에 일기장을 내려놓고서 백치의 눈앞에 손을 흔들었다.

 

"아직도 화났어?"

 

백치는 일기장을 옆으로 치워버리고는 입을 꾹 다문 채 계속해서 신문을 읽어 내려갔다.

 

"너 어렸을 때 K시에 있던 I초등학교 다녔지?"

 

조정이 무릎에 얼굴을 비스듬히 기대며 말했다.

 

"내가 너 보다 몇 살 더 많긴 하지만…… 너랑 같은 학년이었어. 내가 몇 단계 낮았거든. ?"

 

백치의 펜이 움직임을 멈췄다.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백치의 곁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정말 아무런 기억이 없어. 어디서 내가 너한테 기분 상하게 했는지 말이야.……말해 줄 수 있어?”

 

DIDIDIDIDIDIDI〜〜〜〜〜

 

갑자기 백치의 핸드폰이 울려댔다.

 

미동조차 하지 않던 백치는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바이 위탕이었다.

 

"여보세요, ~~ , 알겠어요."

 

몇 마디 안 하고 끊은 전화에 백치의 기분이 금세 좋아진 게 보였다.

 

백치는 조정을 무시한 채 신문을 정리하더니 나갈 것처럼 옷을 입었다.

 

확실히 구름 끼었던 백치의 기분이 맑게 갰다.

 

바이 위탕이 오늘 백치 자신의 환영회를 열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번 뛰어난 활약을 펼친 백치를 높이 평가해 이번에 S.C.I.의 정식 멤버로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이다.

 

준비를 끝낸 백치는 현관문 앞에서 조정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이 조정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나가!!'

 

조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으로 걸어갔다.

 

현관문 앞에서 조정은 백치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 어디가? 나 차 있는데, 데려다줄까??"

 

백치는 대답 대신 손바닥을 내밀었다.

 

"3위안 갚아."

 

"?"

 

조정은 억울하다는 듯 백치를 바라보았다.

 

"내가 언제 3위안을 빚졌다고 그래?"

 

"사과 값!"

 

백치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거 비싼 거야!"

 

"너 진짜 이렇게 치사하게 굴 거야?"

 

조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사과 하나 먹은 거 가지고 뭘 그렇게 따지냐?"

 

"내가 무슨 근거로 ……당신을 믿어?!"

 

백치는 떳떳하게 외쳤다.

 

"나는 친구에게만 음식을 대접한다고!"

 

"!!"

 

백치의 냉담한 말에 화가 치밀었다. 조정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심호흡을 했다.

 

"그래! 너 잘났다."

 

그리고는 지갑을 꺼내 안에 들어있던 10위안을 백치의 손바닥에 위에 탁 소리 나게 올려 두었다.

 

"잔돈은 필요 없어!"

 

조정은 엘리베이터로 몸을 돌렸다.

 

몇 걸음 걸어가자 뒤에서 그를 불러 세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만!"

 

조정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럼 그렇지, 네가 내 매력에 저항할 수 있겠어??

 

미소를 풀고 당당하게 고개를 돌린 그의 눈앞에 두 개의 미확인 물체가 빠른 속도로 날라……

 

'~~'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어서 하나를 잡는 대는 성공했지만, 또 다른 하나가 이마를 명중하며 벌건 자국과 함께 혹이 생겨

버렸다.

 

"~~~"

 

이마를 비비며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

 

뭔가 묵직하고 크다 싶었더니만 조금 전 자신이 먹었던 것과 똑같은 사과였다. 그리고 바닥에도 사과가 둥굴었…….

 

조정은 고개를 쳐들고 백치를 노려보았다.

 

백치도 지지 않고 눈을 부라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난 빚 안 져!!

 

그러면서 백치는 1위안짜리 동전을 던졌다.

 

동전은 빠른 속도로 날아와 넋이 나간 조정의 이마에 명중……

 

"~~~"

 

아파트를 나와 자신의 차에 올라탄 조정은 분풀이하듯 사과를 크게 한 입 베어 물고서는 이마에 난 혹 두 개를 매만지며

이를 갈았다.

 

"저 꼬마 녀석! 분해 죽겠네!"

 

 

쟌 자오는 바이 위탕이 고른 룸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돌아보았다.

 

그랜드 시티 호텔의~~ 유일한 어린이 전용 파티 룸.

 

천장에는 어린이의 생일을 축하하는 문구와 색색의 장식이 달려있었고, 벽에는 온통 미키 마우스와 도널드 덕…….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쟌 자오가 바이 위탕을 흘기며 따져 물었다.

 

"내가 고른 게 아니야! 그 쌍둥이가 고른 거라고!!"

 

바이 위탕은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그래도 여기 고른 게 왠지 납득이 가……."

 

저녁 7.

 

환영회에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S.C.I.를 포함해 강력팀, 제요와 밴드 멤버들, 그리고 정가의 쌍둥이와 바이 유탕까지.

 

룸 안을 꽉 채운 젊은이들의 파티는 한밤중까지 이어졌다.

 

가장 먼저 파티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공손이었다.

 

관자놀이가 시큰거리고 귀가 윙윙거리고 울렸다.

 

"힘듭니까? 데려다줄까요?"

 

공손을 따라 나온 바이 유탕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는 공손의 귓가에 대고 물었다.

 

"……."

 

공손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핑 도는 것이 과음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바이 유탕이 자신의 외투를 공손의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저는 차를 가지러 갈 테니, 먼저 내려가서 입구에서 기다려요."

 

호텔 문을 나서자 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술기운에 몽롱했던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도와드릴까요?"

 

주차장 쪽을 보며 차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손은 어깨를 움츠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영악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서 있었다.

 

공손은 남자를 살폈다. 왠지 모르게 그에게서 바이 유탕과 비슷한 엘리트의 분위기가 풍겼다.

 

……공손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저런 눈을 좋아하지 않았다.

 

친절하게 보이려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그 눈빛 속에 담긴 계산적인 모습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공손은 원래 장사꾼과 사귀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그러니 바이 유탕은 특례라 할 수 있었다.

 

그가 바이 위탕의 형이라는 것 말고는 신분도 특이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위선이 없었다. 때로는 강아지의 눈빛처럼 솔직하기까지 했다.

 

마치 좀 멍청한, 몸집 큰 강아지 같은…….

 

"별로 괜찮아 보이지 않는데요."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필요 없습니까?"

 

남자의 말에 정신 차린 공손은 그제야 자신이 지금 낯선 남자를 앞에 두고 바이 유탕을 생각하느냐 정신을 팔고 있었다

는 걸 깨달았다.

 

게다가 조금 귀엽다고 생각하다니……얼굴에서 열이 느껴졌다.

 

공손은 붉게 물든 얼굴을 돌리며 차갑게 대꾸했다.

 

"필요 없어요."

 

"저는 '심잠(沈潜)'이라고 합니다.”

 

공손의 차가운 태도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생글생글 미소 띤 얼굴로 예의 바르게 손을 내밀었다.

 

남자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던 공손은 다시 몸을 돌려 정면을 응시했다.

 

"나는 관심 없어요."

 

"하지만 저는 당신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심잠은 활짝 미소 지었다.

 

한편, 차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나온 바이 유탕은 멀리서 공손이 다른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눈썹을 치켜떴다.

 

공손은 익숙한 벤츠가 자신 앞에 서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조수석에 올라탔다.

 

심잠이 공손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잘 가요. 공손……."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이 유탕은 차를 출발시켰다.

 

"……아직도 머리가 아픕니까?"

 

한참을 말없이 운전하던 바이 유탕이 침묵을 깨며 물었다.

 

공손은 운전석의 바이 유탕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미소 지었다.

 

"나는 당신이 아까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을 줄 알았어요."

 

바이 유탕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심잠, 심씨 그룹의 오너, 제 라이벌이죠."

 

"~~"

 

공손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어쩐지 뭐요?"

 

바이 유탕이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하게 물어왔다. 하지만 그의 눈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냥 어쩐지요."

 

일부러 얄밉게 대꾸하며 말을 돌리자 바이 유탕이 불안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게 너무 재밌게 느껴졌다. 요즘 이 독선적인 남자는 개보다 더 말을 잘 들었다.

 

항상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자신과 어떻게 해야 잘 지낼 수 있는지 배우려는 듯 나름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나한테 관심이 있대요."

 

공손이 싱긋 웃으며 바이 유탕을 돌아보았다.

 

"이제 어떻게 할 거죠? 그 사람을 찾아서 해치워 버릴 건가요?"

 

바이 유탕은 한숨을 내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요정…….'

 

이윽고 벤츠가 공손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차를 세우고 바이 유탕은 공손을 돌아보았다.

 

"아직도 나한테 화난 겁니까?"

 

공손은 눈썹을 치켜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손."

 

바이 유탕은 공손의 눈을 마주 보았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를 괴롭히고 있잖아요."

 

"내가 언제요?"

 

그러면서 공손이 환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은 사람과 가축의 심장에 치명적이었다.

 

바이 유탕은 한숨을 쉬었다.

 

"내리시죠.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데려다준다고요?"

 

공손이 새삼 의아하다는 듯 물어왔다.

 

"당신도 위에 살잖아요?"

 

"……"

 

바이 유탕은 믿기지 않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공손을 보았다.

 

"……제가 다시 와도 된다고 말하는 겁니까?"

 

공손은 차에서 내렸다.

 

"그 집은 당신 거잖아요! 당신이 살고 못 살고에 내가 무슨 상관이죠?"

 

"그렇죠! 살 수 있죠! 그럼 오늘 밤에는 자고 가겠습니다!"

 

헐레벌떡 차에서 내린 바이 유탕은 앞서가는 공손의 옆에 섰다.

 

"그럼 이불 좀 빌리겠습니다. 제 이불은 회사에 있거든요."

 

"남는 이불이 없는데요."

 

"그럼 저는 어디서……?"

 

"잘 생각해 봐요."

 

"공손……."

 

"손 치워요!"

 

"네네……."

 

 

술에 취해 잠들어 버린 쟌 자오를 양팔로 안아 들고 바이 위탕은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곁에서 대부분의 술을 막긴 했으나 잠깐 한 눈판 사이,

 

가뜩이나 술도 약하면서 도수가 높은 술을 연거푸 들이마신 쟌 자오가 머리가 핑 도는지 양쪽 뺨을 벌겋게 물들인 채 소파에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

 

어쩔 수 없어 바이 위탕은 그를 데리고 먼저 파티에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쟌 자오를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내려놓고 양말을 벗겼다.

 

외투를 벗기기 위해 위로 올라와 한쪽 팔을 빼는데……

 

"으응~~"

 

쟌 자오가 갑자기 바이 위탕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머리를 기대왔다.

 

"루반~~"

 

…………

 

루반은 바이 유탕이 돌아왔을 때 두 사람에게 선물한 고양이로 지금은 쟌 자오와 바이 위탕의 어머니 두 분이 기르고 계

셨다.

 

너무 바쁜 나머지 고양이를 돌볼 시간이 없었던 두 사람은 고양이가 외로움을 탈까 걱정되어 아쉽지만 두 사람의 어머니

들께 고양이를 맡기게 된 것이다.

 

바이 위탕은 허리에 감싼 쟌 자오의 팔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다시 외투를 천천히 벗겼다.

 

몸을 뒤척이던 쟌 자오가 이번엔 그의 팔을 붙잡고 얼굴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루반……"

 

바이 위탕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찔해져 오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날뛰는 심장을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렀다.

 

침착하자.

 

외투를 벗기고 쟌 자오의 넥타이를 풀기 위해 몸을 살짝 숙였다.

 

그 순간, 갑자기 쟌 자오가 그의 목을 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비벼댔다. 그의 따뜻한 숨결이 귀가에 닿았다.

 

"루반……"

 

~~!! 필사적으로 이어오던 인내심이 끊기며 동시에 이성이 떠나가 버렸다.

 

셔츠의 단추를 풀러가며 은은하게 알코올 향이 풍겨지는 입 안을 부드럽게 휘저으며 탐색했다.

 

살짝 열린 입술 틈 사이로 쟌 자오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바이 위……."

 

~~ 그 목소리가 순식간에 바이 위탕을 현실로 불러들였다.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무방비하게 잠들어 있는 쟌 자오를 바라보았다.

 

그의 셔츠가 반쯤 벗겨져 있었다.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바이 위탕은 자신에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나에 대한 고양이의 믿음이고, 나는 절대 그를 실망시켜서는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고양이에게 불공평했다.

 

조금 전의 입맞춤으로 붉게 부풀어 오른 입술의 틈 사이로 쟌 자오의 가느다란 호흡이 새어 나왔다.

 

바이 위탕은 한숨을 내쉬었다. 셔츠차림이 불편해 보였지만 더 이상 그의 옷을 벗겨낼 자신이 없었다.

 

코트를 대충 벗어 던지고는 침대에 누웠다.

 

나름 편안한 자세를 취하며 쟌 자오를 꼭 껴안고 눈을 감았다.

 

……고양아, 잘자~

 

두 시간 후, 바이 위탕은 스탠드를 켰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조금 전 쟌 자오가 부른 바이 위……가 앞서 부른 루반과 같은 느낌이었다.

 

불을 끄고 다시 눈을 감았다.

 

다음날, 바이 위탕은 다급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바이 위탕은 탁자 위에 올려둔 시계로 고개를 돌렸다.

 

5?

 

옆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에 설핏 잠이 깬 쟌 자오는 통화를 하는 바이 위탕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말없이 상대의 말을 듣고 있는 바이 위탕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심각한 얼굴로 전화를 끊은 그에게 쟌 자오가 물었다.

 

"왜 그래?"

 

바이 위탕은 고개를 돌려 쟌 자오를 내려다보았다.

 

"어제 그 유치원의 손천이라는 꼬마 있잖아. 첫 번째 현장 발견자말이야……. 그 아이가 없어졌다고 가족이 실종신고 했

."

 

"?"

 

놀란 쟌 자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어떻게 된 거야?"

 

"꼬마의 아버지가 어제 15분쯤 늦게 데리러 올 거니깐 문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오니깐 손천이 안 보였다는 거야.

그래서 친구 집이나 근처 할머니 집에 갔나 싶어서 찾아봤는데 아무 데도 없더래."

 

바이 위탕은 불안한 눈치였다.

 

"고양아, 설마……."

 

"일단 현장에 가보자!"

 

쟌 자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30분 후, 두 사람은 유치원에 도착했다.

 

휴교 결정이 내려진 유치원의 선생님들 모두 나와 손천을 찾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쟌 자오와 바이 위탕은 유치원 입구로 걸어갔다.

 

노진이 유치원 입구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노진아?"

 

쟌 자오가 노진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불렀다.

 

"왜 여기 있어?"

 

노진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이 창백했다.

 

"어제 여기서 칭칭(倩倩-애칭)이랑 인사를 했어요. 나는 집에 가고 칭칭이는 아빠 기다린다고 해서……."

 

바이 위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치원 입구를 나오면 곧바로 차가 다니는 도로가로 이어졌다.

 

그 길 건너편에 편의점 하나가 있었다.

 

바이 위탕은 길을 건너 편의점으로 향했다.

 

노진이 쟌 자오의 손을 잡아당겼다.

 

"나도……, 나도 같이 찾으러 다니고 싶어요."

 

 

쟌 자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칭칭이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

 

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어제 같이 기다리면 좋았을 텐데……. 어제 칭칭이가 계속 우니까…… 나도 좀 짜증이 나서……."

 

노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 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책감이 가득했다.

 

쟌 자오는 노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편의점에 들어갔던 바이 위탕이 길을 건너 돌아왔다.

 

"편의점에 물어봤는데 유치원 쪽은 그다지 주의 깊게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대."

 

쟌 자오는 노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천천히 제자리를 빙 돌아보며 주위를 살폈다.

 

"여긴 번화가야. 만약 낯선 사람이 여자애를 강제로 끌고 가려고 했으면 눈에 안 띌 수가 없어."

 

"그럼 제 발로 걸어갔다는 건가?"

 

바이 위탕이 혼잣말하듯 물었다.

 

"어디로 간 거지?"

 

쟌 자오가 먼 곳의 한 지점을 가만히 응시한 채 노진에게 물었다.

 

"칭칭이가 장 선생님을 많이 좋아했니?"

 

노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고 대답하자 쟌 자오가 다시 물었다.

 

"만약에 네가 돌아가신 장 선생님께 선물하고 싶다면 너는 어떤 걸 보내줄 거야?"

 

"……?"

 

옆에서 듣고 있던 바이 위탕이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다.

"교실 입구에 놓겠지."

 

"손천은 어린애라 꽃을 살 돈이 없어. ……그렇다면 어떻게 했을까?"

 

"꽃을 따러가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바이 위탕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예를 들어 화단이라고 하면……공원이나……."

 

유치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화단 하나가 있었다.

 

화단에는 흰색의 국화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던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재빨리 화단으로 달려갔다.

 

화단 뒤로 골목길이 있었다. ……골목길 끝에는 담장이 쳐져 있었고, 그 담장 뒤로 철거 중인 건물이 있었다. --공사장이었

.

 

나쁜 예감이 들었다. 두 사람은 담장을 돌아 철거가 멈춘 듯 방치된 공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계속 안으로 들어가자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회색의 수로관이 높이 쌓여 있었다.

 

두 사람은 수로관 위로 올라가 아래를 살피다 멍해지고 말았다.

 

파이프를 넣기 위해 파놓은 듯 깊고 넓은 구덩이 안에 그야말로 기괴한 붉은색 원형 패턴이 그려져 있었다.

 

눈에 익숙한 그 패턴은 분명 마법 진이었다.

 

그 그림의 한 가운데에 작은 체구의 시체가 누워있었다.

 

입과 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주위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바이 위탕은 S.C.I. 팀원들을 호출한 뒤 곧바로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를 따라 노진도 내려갔다.

 

가만히 시체를 바라보던 노진이 주먹이 하얗게 질리도록 움켜쥔 채 중얼거렸다.

 

"내가 어제 같이 기다렸다면……."

 

바이 위탕은 쪼그리고 앉아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는 노진을 꼭 끌어안았다.

 

"네 잘못이 아니야."

 

바이 위탕은 쟌 자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수로관 위에서 멍하니 내려다보는 쟌 자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무언가에 굉장히 놀란 듯 보였다.

 

"고양아?"

 

바이 위탕은 쟌 자오에게로 돌아갔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경찰들과 유치원 선생님들, 비통에 젖은 아이의 아버지와 기자들까지 몰려들었다.

 

……쟌 자오는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그와 무관한 듯,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고양아!"

 

바이 위탕이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너 왜 그래?"

 

쟌 자오가 고개를 돌려 바이 위탕을 바라보았다.

"그가 돌아왔어!"

 

"?"

 

"그 마법 살인범 말이야."

 

쟌 자오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이번 사건은 어제 사건이랑 달라. 이건 본존(本尊)이 한 거야. ……그가 돌아왔어. 어제 사건 때문에 정신이 나간 것 같아."

 

"너 확실해?"

 

"."

 

쟌 자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봐봐. 느껴질 거야!"

 

바이 위탕은 몸을 돌려 발밑의 시체와 마법 진을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어제 현장에서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느껴졌다.

 

흥분에 취해 즐기고 있는 듯한……

 

섬뜩한 기운이 온몸을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