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살인범 01 모방
새벽 5시 50분.
뉴욕에서 S시로 가는 국제선의 일등석.
11시간에 육박하는 장기비행의 여파로 승객들의 얼굴에는 상당히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바이 위탕은 몸을 뒤틀었다. 원래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그에게 11시간 동안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건 그야말로
고문과 같았다.
그는 근질근질해져 오는 몸을 뒤틀며 슬쩍 옆을 돌아보았다.
바로 옆에 앉은 쟌 자오는 돌아오는 내내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고, 통로 쪽에 앉은 백치는 의자에 몸을 누인 채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바이 위탕은 쟌 자오를 방해하기로 결심했다.
"고양아~~"
"쉿!"
하지만 그의 시도를 단칼에 막혀버렸다. 바이 위탕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쟌 자오는 계속 노트북을 두드리는데 몰두했다.
세 사람은 윌슨 박사 사건의 수사 협조 요청을 받아 뉴욕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쟌 자오는 그곳의 범죄 심리학자들과 이번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며 교감을 쌓았고, 돌아올 때는 그들로부터 사건
과 관련된 많은 자료를 선물로 받았다.
귀중한 자료를 얻은 만큼 제대로 정리하고 싶은 욕심에 그는 돌아오는 내내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고양이를 찔러봤지만 무시만 당한 바이 위탕은 어쩔 수 없이 비행기 안을 돌아다니기로 하고 몸을 일으켰다.
기지개를 켜며 복도로 나서는데 멀리서 다급한 얼굴의 스튜어디스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혹시 경찰이신가요?"
"네."
바이 위탕은 스튜어디스가 불안에 떠는 모습에 덧붙여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쟌 자오도 노트북에서 얼굴을 들고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아, 이코노미석에 계신 세 분의 상태가 이상해서요."
"이상? 어떻게 이상하죠?"
쟌 자오가 물었다.
주변의 소음에 눈이 떠진 백치는 잠이 덜 깬 듯 몽롱한 얼굴로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에 알약을 몇 개 드시는 것 같더니, 점점 상태가 이상해져요."
스튜어디스가 말했다.
"도착까지 한 시간도 안 남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세 분의 승객 상태가 갈수록 이상해지는 게 신경 쓰여서요. 혹시 한 번
봐주실 수 있으세요?"
"그럼요."
바이 위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다 문득 떠오른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제가 경찰이라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에, 그게 앞 좌석에 앉아 계신 승객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그러면서 스튜어디스가 손가락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사람들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좌석 위로 얼굴을 내민 채 한 남자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
바이 위탕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는 사람?’이라는 물음을 담아 쟌 자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쟌 자오는 고개
를 가로저었다.
남자는 바이 위탕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우아한 블랙 가죽 코트에 황금색렌즈의 선글라스를 매치한 남자는 깔끔하고 단정한 단발머리(여성의 숏커트 정도), 날렵하게 뻗은 콧날, 선글라스 뒤로 보이는 깊은 눈과 날렵한 턱선 까지.
선글라스에 가려져 있다고는 하지만 한눈에 봐도 출중한 외모는 동양인 보다는 혼혈인에 가까웠다.
……그리고 정확하지는 않지만……어딘가 낯익은 느낌이었다.
"이상할 것 없어요."
남자는 가운데 손가락으로 콧등의 선글라스를 살짝 밀어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뭐든지 알거든요."
"정아! 그만 떠들어."
사람들이 묻기도 전에 알아서 대답하는 남자를 만류하며 옆에 앉은 듬직한 체격의 중년 남성이 옷을 잡아당겼다.
남자를 의자에 앉힌 중년 남성은 바이 위탕을 돌아보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얘가 좀 이상해서요.""아닙니다."
바이 위탕은 남자의 말을 가로막았다.
"저는 이유를 알고 싶군요."
"아아."
바이 위탕의 말에 남자는 다시 몸을 돌려 씩 웃어 보였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기(氣)가 있죠. 그리고 나는 그걸 볼 수 있어요. 왜냐하면 나에겐 마력이 있거든요."
"에……, 저기 일단 가 봐도 될까요?"
스튜어디스는 곤란하다는 얼굴로 그들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며 바이 위탕에게 재촉했다.
"가죠."
스튜어디스를 따라가기 직전, 바이 위탕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쟌 자오를 내려다보았다. --너 안 갈 거야?
쟌 자오도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관심 없어!
그리고는 다시 노트북으로 고개를 돌려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바이 위탕이 스튜어디스를 따라 이코노미석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백치가 그 뒤를 서둘러 따랐다.
백치가 남자의 옆을 지나치는 순간, 어리둥절한 얼굴의 남자가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당신도 경찰??"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으로 놀라워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백치는 싸늘한 시선으로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순딩순딩하며 허둥대는 모습만 보이던 백치는 처음 본 남자에게 평소의 그답지 않은 거친 말을 쏟아냈다.
"나는 마술사와 말도 섞고 싶지 않아. 마술사들은 모두 사기꾼이야."
그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는 바이 위탕의 뒤를 쫓았다.
백치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남자는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남자는 한참을 눈만 껌벅거리며 앉아 있다가 슬쩍 고
개를 돌려 자신과 똑같이 놀란 듯 보이는 쟌 자오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제가 마술사라는 걸 안 거죠?"
쟌 자오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태연스러운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아마도 그가 당신의 기를 볼 수 있었겠죠……."
"푸웁~~~"
옆에 앉아 있던 중년 남성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다.
쟌 자오는 다시 노트북으로 얼굴을 돌렸다.
마술사라는 말을 듣고 나니 그가 누군지 확실히 기억이 났다. ……어딘가 눈에 익다 했던 남자의 얼굴은 분명 거리를 지나
가다 본 포스트 속 얼굴이었고, 잡지에서도 본 기억이 있었다.
이름은 조정(赵桢), 당대의 가장 위대한 마술사라고 일컬어지며 모두 그를 ‘마법사’라고 칭했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마술쇼에서 때때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마술을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마술은 정말을 마력을 부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놀라웠고, 게다가 본인도 그런 식으로 자신을 내세우며 항상
마법을 안다고 말해왔다.
그런 남자의 얼굴을 한눈에 알아볼 수 없었던 건 얼굴이 선글라스에 가려져 잘 안 보였을 뿐 아니라 포스터 속 얼굴과는
그다지 닮지 않은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설령 닮았다 하더라도 바이 위탕처럼 오락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절대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오락에 관심이 없는
건 쟌 자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가 남자의 얼굴을 기억한 건 단순히 그의 기억력이 뛰어나서였다.
쟌 자오가 그런 생각을 하며 키보드를 다시 두드리려는 순간, 주위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성의 비명
이 들리고 쿵쾅거리며 뜀박질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곧이어 한 손에 칼은 든 두 명의 남성이 일등석 쪽으로 달려왔다. 그들의 붉게 충혈된 눈과 어깨를 크게 들썩이는 거친 호흡에서 약을 먹었다는 것이 분명해 보였고, 그 양 또한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바이 위탕은 그들의 뒤를 매섭게 쫓아갔다. 이윽고 도망치는 앞 사람과의 거리가 손에 닿을 듯 가까워지자 바이 위탕은
남자의 어깨를 홱 낚아채는 동시에 팔을 뒤로 비틀면서 바닥으로 넘어뜨려 단숨에 남자를 제압했다. 남자의 손에서 떨어
진 칼이 바닥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앞서 달려가던 남자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듯 멈칫했다. 그가 한눈판 사이 바로 옆에 서 있던 조정이 조금 전 바이
위탕의 동작과 똑같은 동작으로 남자의 어깨를 비틀어 쓰러뜨리며 제압했다.
조정은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바이 위탕을 바라보았다.
"방금 보고 배운 건데, 어때요? 동작이 괜찮은가요?"
백치는 바이 위탕이 이미 제압해 두었던 또 한 명을 끌고 돌아왔다.
기장은 세 사람을 일등석 휴게실에 가뒀다.
"어떻게 된 거야?"
쟌 자오가 바이 위탕의 곁으로 다가와 호기심 섞인 얼굴로 물었다.
"약물 과다 복용에 승객 한 명을 인질로 잡아서는 스튜어디스에게 아프가니스탄으로 비행기를 돌리라고 하더라."
바이 위탕은 비웃으며 스튜어디스가 냉수가 담긴 컵을 가져오자 여전히 정신 못 차린 채 발버둥 치는 세 명에게 물을 쏟아부었다.
탈구된 어깨에 차가운 물이 닿자 세 사람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신음을 내뱉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사람은 정신이 드는지 주위를 살피다 잔뜩 기가 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소동이었지만, 바이 위탕의 발 빠른 대처로 큰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던 승객들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승객들 사이로 어린 소녀가 겁에 질린 채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옆에서 엄마가 아무리 달래보아도 소녀는 울음을 멈출 줄 몰랐다.
"하이, 어린 숙녀분. 혹시 꽃 좋아해?"
조정이 소녀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소녀는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조정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어? 이게 뭐지?"
그러면서 조정이 소녀의 귀 뒤에서 붉은 장미 한 송이를 꺼냈다.
"우와!"
소녀는 눈빛을 반짝이며 조정과 장미꽃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자!"
조정이 소녀에게 꽃을 건네고 그 옆에 앉아 다정하게 물었다.
"무슨 동물 좋아해?"
"돌고래!"
흥분한 소녀가 소리쳤다. 소녀의 눈물은 어느새 멈춰 있었다.
"하하."
조정은 짐짓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건 너무 커서 비행기에 불러낼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조정이 손을 가볍게 쥐고 위아래로 흔들다 천천히 어린 소녀의 눈앞에 내밀었다.
"우리가 작아지게 만들자."
그가 손을 펼치자 손바닥 안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돌고래 모형이 놓여 있었다.
소녀는 펄쩍 뛰며 좋아했고, 주위의 승객들은 조정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뒤에서 바이 위탕과 쟌 자오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조정은 많은 사람에게 주목되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일어서서 주위 승객들에게 인사하며 바이 위탕과 쟌 자오 쪽으로
고개를 돌린 조정은 순간 벙 찌고 말았다.
쟌 자오의 어깨너머로 백치가 화난 얼굴을 한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치는 조정을 노려본 채 콧방귀를 뀌었다.
"사기꾼!"
쟌 자오와 바이 위탕이 의아한 눈빛으로 백치를 바라보았다. 의아한 것은 조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옆에 있던 중년 남
성 즉, 그의 매니저 진필에게 속삭여 물었다.
"내가 무슨 미움 산 적 있나?"
진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는 않았을걸."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뻘쭘해진 백치는 허둥대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 옆으로 조정이 살며시 다가왔다.
"왜 나한테 사기꾼이라고 한 거야?"
백치는 힐끗 그를 흘겼다.
"1/25초 빠른 동작과 주의를 다른 곳에 돌린 것 때문에 사람들은 당신의 동작을 육안으로 포착하기가 어려워."
그리고는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리며 한 마디 덧붙였다.
"마술사는 모두 사기꾼이야."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S시 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일어나 계신 분은 모두 자리로 돌아가 좌석 벨트를 매주시
기를…….”
두 사람의 무거운 분위기를 스튜어디스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적시에 울리며 깨뜨렸다.
자리로 돌아와 앉은 조정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물음표가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전에 내가 저 사람한테 미움 산 적이 있나!?
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 키가 작고, 인형 같은 얼굴, 큰 눈……그럴 리가 없잖아!
확실히 본 적이 없단 말이야…….
비행기가 착륙할 때까지 조정은 열심히 생각했지만~~~~~끝내 답을 얻지는 못했다!!
"이름이 뭐야?"
쟌 자오와 바이 위탕을 따라 내리는 백치의 뒤로 조정이 다가와 물었다.
백치는 말없이 조정을 차갑게 쏘아보더니 재빨리 짐을 챙겨들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완전 무시!
"저 사람은 틀림없이 나한테 원한이 있는 거야!"
조정은 자신이 미움받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이 위탕의 전화기가 시끄럽게 울어댔다.
왕조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대장, 지금 도착하셨습니까?」
전화기로 들려오는 왕조의 목소리 너머로 경적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사건이 생겨서, 일단 신성 유치원으로 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왕조가 말했다.
「전화로는 말씀드리기가 힘듭니다.」
"그래."
전화를 끊은 바이 위탕은 쟌 자오와 백치를 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사건이야. 우선 현장으로 가자."
곧이어 세 사람을 태운 차가 신성유치원 앞에 도착했다. 이 유치원은 쟌 자오와 바이 위탕에게는 익숙한 곳이었다.
바로 얼마 전, 납치 사건이 있었던 바로 그곳으로, 지난번에도 위험했는데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감시 담당자들과 형사들이 부지런히 들락거리는 유치원 입구를 바라보며 바이 위탕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유치원은 일단 풍수지리 선생 좀 불러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세 사람을 발견한 왕조가 건물 안에서 뛰쳐나왔다. 그는 바이 위탕에서 손을 올려 인사한 뒤 곧바로 사건의 경위를 보고
했다.
"오늘 아침, 한 유치원생이 교실에 들어갔다 죽어있는 피해자를 발견했습니다."
쟌 자오는 미간을 찡그렸다.
"교실에서 죽었다고요? 그렇다면 단순 사망 사건인데 왜 S.C.I.에게 온 거죠?"
왕조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 사건은 어딘가 좀 이상합니다! 어쨌든 현장을 보시면 아실 겁니다."
네 사람은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사건이 발생한 곳은 2층 교실로 문 앞에는 반 번호 대신 달 모형 하나가 달려 있었다. 학년마다 세 학급으로 구성된 이
유치원은 반을 별, 달, 태양으로 구분했다.
교실 입구에 들어선 쟌 자오와 바이 위탕은 순간 멈칫했다. 교실의 책상과 의자는 모두 벽으로 밀쳐져 있었고, 가운데 널
찍하게 나타난 공간에 피해자가 누워있었다.
피해자는 젊은 여성으로 이 유치원의 선생님이었다. 살아있을 적에는 꽤 아름다웠을 그녀였지만 지금은 경동맥이 잘린
채 죽어 있었다.
더욱이 기괴한 것은 그녀가 누운 자리 밑에 그려진 원형 패턴이었다. 희한한 모양으로 붉게 그려진 그것은 한눈에도 피
로 그려진 것이 확실했다.
고대 유럽에서 유행했던 그런 마법 진 같은……. 패턴이 낯설기는 하나 이런 광경은 익숙했다.
"마법 살인 사건……."
한숨 섞인 목소리로 쟌 자오가 중얼거리자 왕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강력팀도 이걸 보자마자 가정 먼저 우리에게 알린 겁니다."
"이상하군!"
바이 위탕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법 살인 사건은 경찰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건으로, s시의 10대 현안 중 하나였다.
그 신비한 살인자는 무작위로 살인을 저지른 뒤 매번 범행 장소에 괴상한 마법 진을 남기고 그 위에 시체를 올려놓았다.
그는 1년 동안 모두 30명을 살해했지만……, 이 사건은 이미 10년 전에 멈춰 범인도 마치 증발한 듯 사라진 상태였다.
그런 사건을 설마 10년 뒤에 다시 보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기초적인 검시를 끝내고 공손이 장갑을 벗으며 걸어왔다.
"어떻습니까?"
바이 위탕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면서 물었다.
"이름 장진진(张真真), 23세, 초기감식은 경동맥 절단으로 인한 출혈 과다야. 사망 시각은 어젯밤 10시에서 11시 사이."
"그 마법 진은요?"
쟌 자오가 다급하게 물었다.
"피해자의 피를 이용해 그렸는데 아마 붓 같은 도구를 썼을 거야……."
거기까지 말한 공손은 잠시 멈추더니 바이 위탕을 보며 덧붙였다.
"10년 전의 사건과 거의 똑같아. "
바이 위탕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미간을 비볐다.
"그럼 다시 말해, 실없는 멍청이가 10년 전 사건을 따라 범행을 저지른 게 아니라는 겁니까?"
공손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내 소관이 아니지. 나는 검시 결과로만 얘기하는 것뿐이니까."
쟌 자오는 시체 옆에 쭈그리고 앉아 살피다 다시 책상에 올라가서 내려다보았다.
"고양아, 어때?"
바이 위탕이 묻자 쟌 자오는 책상 위에서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이 한 짓이 아니야."
"아?"
쟌 자오의 주위로 바이 위탕과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사건은 내가 오랫동안 연구해 왔어."
쟌 자오는 바이 위탕이 내민 손을 잡고 책상에서 내려왔다.
"그 범인은 매번 사람을 죽인 뒤 높은 곳에서 죽은 사람의 모습을 봤어.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을 감상하듯이.
그 과정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보다 범죄를 즐기는 데 중점을 뒀다는 거야. 그래서 매번 그가 살인을 저지르는 현장에는 여지없이 두드러져 보이는 물건이 남아 있어. 희생자들의 머리 바로 위에서 네댓 걸음 떨어진 곳에서 나타나는데, 이처럼……."
그러면서 쟌 자오는 의자를 들어 사체의 머리에서 다섯 걸음 떨어진 곳에 의자를 두고 왔다.
바이 위탕을 그 의자에 올라가게 한 뒤 쟌 자오가 물었다.
"뭐가 보여?"
바이 위탕은 시체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시체와 패턴이 전체적으로 시야에 들어왔어."
그는 의자에서 내려와 검시관에게 손짓했다.
"이 각도로 몇 장 부탁드립니다."
왕조는 고개를 갸웃했다.
"모방 범죄인가 보군요. 강력 범죄 팀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네요."
백치는 그림 옆에 쪼그리고 앉아 문양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또 살인을 저지를 거예요."
백치의 말에 쟌 자오와 바이 위탕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왕조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이를 눈치챈 쟌 자오가 그에게 물었다.
"만약에 사람을 죽이고 연쇄살인범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면, 10년 동안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을 골라서 모방
하지는 않겠죠?"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바이 위탕이 한숨을 쉬었다.
"모방 연쇄 살인인가……."
"모방이라기보다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
쟌 자오가 말했다.
"일반적으로 모방 연쇄 사건의 범인은 모두 일정한 경계성 장애와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어.
그들은 기본적인 감정이, 예를 들어 연민이나 도덕관은 낮지만 그들의 사상적 측면의 감각은 더욱 발달하였고, 모방한 사람을 숭배하고 범행을 흉내를 내며 아이돌이 된 듯한 쾌감을 즐겨. 그래서 그들은 세부사항에 대해 신경 쓰지 않지! 다만……."
"다만 이 사람의 흉내는 조잡해."
바이 위탕이 말했다.
"즐길 뜻은 전혀 없고, 오로지 절차만 따라 한 거야."
"그게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한 강력계 형사가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범인이 그 마법의 살인자와 관계가 있다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살인자를 안다던가, 모른다던가 그런 거 말입니다."
쟌 자오는 자신의 턱을 가볍게 두드렸다.
"저는 범인이 마법의 살인자의 살인 사건과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잠시 생각하던 바이 위탕은 왕조를 돌아보았다.
"이 사건은 우리가 인수하고, 팀원들을 불러서 이전의 마법 살인 사건에 대한 자료를 모두 찾아보도록 해. 모든 피해자를
조사하고, 나한테 친인척과 친구 등 관련 인물들 명단 한 부 가져와."
"네, 대장!"
왕조는 즉시 현장을 떠났다.
백치는 자리에 일어서서 쟌 자오를 돌아보았다.
"이것은 중세의 마법 진으로 눈의 패턴처럼 보여요."
"확실히 눈을 많이 닮았군."
바이 위탕과 쟌 자오는 그림을 새삼 다시 관찰했다.
"눈은 무엇을 의미하지?"
바이 위탕이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백치는 씁쓸할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쟌 자오는 싱긋 웃으며 백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백치야, 시 도서관에 가서 마법에 관한 모든 책을 빌려 오렴!"
"네."
입구로 한 걸음 내디딘 백치는 불쑥 뭔가 생각이 난 듯이 걸음을 멈추었다. 급히 방향을 바꾸어 쟌 자오를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해리포터》도 가져와요?"
………쟌 자오와 바이 위탕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다 동시에 입구를 가리켰다.
"빨리 가!"
"네……. 알겠어요~~"
백치는 허둥지둥 밖으로 달려 나갔다.
현장 조사를 마치고 쟌 자오와 바이 위탕은 교실을 나와 건물 뒤편의 작은 운동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10여 명의 아이
가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증거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예닐곱 살의 아이들은 대부분 환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낯익은 한 아이를 보자 내심 기대감이 생겼다.……바로, 노진.
노진은 울고 있는 여자아이를 달래주고 있었다. 그리고 때때로 고개를 들어 두 사람 쪽을 바라보았다.
노진은 바이 위탕이 손짓하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울고 있는 여자아이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넸다.
그리고 여자아이와 함께 쟌 자오와 바이 위탕 앞으로 다가왔다.
"바이 삼촌, 자오 삼촌, 얘는 손천(孙倩)이라고 해요. 오늘 아침에 맨 처음으로 선생님을 발견했어요."
노진이 두 사람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방금 물어봤는데 얘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대요. 그냥 문을 열었는데 장 선생님이 바닥에 누워있고, 피
가 있으니깐 놀라서 울었대요. 나중에 우리가 와서 다른 반 선생님께 얘기했더니 선생님이 경찰에 신고했어요."
이후 노진이 피해자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줬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현장 조사가 일단락되자 바이 위탕과 쟌 자오는 우선 S.C.I.로 돌아가기로 했다.
"고양아, 너 어젯밤에 밤새웠잖아."
바이 위탕이 차를 운전하며 말했다.
"안 졸려."
시트에 등을 기댄 쟌 자오가 옆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며 대답했다. 그러다 문득 빠르게 지나가는 차창 밖의 풍경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 어디가? 경찰청은 이쪽이 아니잖아."
"일단 집에 가서, 샤워 좀 하자. 그리고 넌 몇 시간이라도 눈 좀 붙이는 게 좋겠어."
그 사이, 그들을 태운 차가 기숙사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안 돼, 모두 일을 하고 있는……흡……."
초조한 얼굴로 돌아가자고 재촉하는 쟌 자오의 입술을 바이 위탕이 도장 찍듯 입술로 꾹 눌렀다.
"고양아, 너는 멀쩡히 잘 돌아가는 두뇌만 유지하면 돼. 알겠지?"
그러면서 바이 위탕은 쟌 자오의 턱을 가볍게 두드렸다.
얼굴이 붉어진 쟌 자오는 바이 위탕을 힘껏 밀쳤다. 바이 위탕이 뒤로 살짝 물러난 틈에 쟌 자오는 재빨리 차에서 내려
씩씩거리며 계단을 올랐다. 뒤에서 바이 위탕이 애타게 쟌 자오를 불렀다.
"고양아, 짐 드는 것 좀 도와줘!!"
하지만 지금의 쟌 자오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나 요즘 왜 이러는 거야? 저 놈의 생쥐가 무슨 말만 했다 하면 왜 자꾸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거냐고~~~~
짜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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