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는 날카로운 칼이 자신의 목덜미로 내려쳐 지는 것을 보면서도 도망칠 수가 없었다.
손가락이 교묘하게 목덜미를 쥐고 있어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때 그의 시야 한 귀퉁이에 붕대 감은 손이 보였다.
그 직후 퍽 하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붉은 핏방울이 튀어 올랐다.
하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칼이 그에게 닿기 직전, 누군가 옆에서 나타나서는 온몸으로 칼을 방어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나타난 그 인물은 손에 꽂힌 칼은 상관치 않고, 그대로 몸을 틀어 반대쪽 팔꿈치로 상대를 가격했다.
뒤에서 신음이 들렸다. 백치는 자신의 목덜미를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황급히 그 손에서 벗어나며 고개를 홱 틀었다.
상대는 검은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좀 더 상대의 얼굴을 관찰하려던 찰라, 누군가 뒤에서 백치의 팔을 잡아당겼다.
어어, 하는 사이 백치는 한쪽으로 끌려갔다.
상대가 발을 멈추며 잡았던 손을 놓자 백치는 그제야 상대가 조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손바닥에는 조금 전 칼을 막으면서 박힌 칼이 그대로 박혀 있었다.
백치를 공격했던 검은 복면은 두 사람과 거리가 생기자 힐긋 눈치를 살피며 발을 조금씩 뒤로 빼더니, 두 사람의 신경이 서로에게 쏠린 틈을 타 계단을 통해 아래로 도망쳤다.
“아~~”
백치는 본능적으로 상대의 뒤를 따라서 가려 했다.
하지만 한 발을 채 떼기도 전에 조정이 그의 팔을 움켜쥐었다.
“가긴 어딜 가?! 너 총은 있냐?!”
“에……”
차가운 조정의 음성에 백치는 그제야 자신에게는 총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는 문직(文职)으로 기본적으로 총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던 것이다.
“됐어, 목숨만 무사하면 됐지.”
조정은 백치의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그대로 자신의 손바닥에 박힌 칼을 뽑아 들었다.
벌어진 틈 사이로 피가 줄줄 흘렀다.
“피 나잖아~~!!”
백치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기겁했다. 당황한 그는 허둥대며 부산스럽게 제자리를 맴돌았다.
어떡하지? 피가 너무 많이 흘러~~~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니야?!
조정은 쓸데없는 걱정에 안절부절못하는 백치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백치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넌 괜찮아?”
그의 물음에 백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뭔가 깨달은 듯 “아!” 하고 고개를 쳐들었다.
살짝 커진 조정의 눈을 마주한 채 그가 소리쳤다.
“빨리! 의사 선생님을 불러야 해!”
그리고는 쏜살같이 복도로 뛰쳐나갔다.
조정이 백치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는 그는 이미 저만치 복도를 내달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
………………
빠르게 달려온 의사는 칼이 손바닥을 통과하며 뼈를 건드려 한동안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치료받는 동안 백치는 진료실 앞을 뱅뱅 맴돌았고, 이 모습은 병원에 도착한 쟌 장오와 바이 위탕이 가장 먼저 마주친 장면이었다.
“무슨 일이야?”
쟌 자오가 백치에게로 다가가며 물었다.
그는 창백한 얼굴의 백치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백치는 두 사람에게 조금 전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두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얼굴은 봤어?”
바이 위탕이 물었다.
“아니요.”
백치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복면을 쓰고 있어서……. 하지만 신음소리로 봐서는 남자가 분명해요.”
“이상해~~~”
쟌 자오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제 자리를 맴돌며 중얼거렸다.
“왜 백치를 죽이려고 했을까? 이번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데…….”
“칼은 이거예요.”
그러면서 백치는 칼이 담긴 봉투를 두 사람 앞에 내밀었다.
“장갑을 끼고 있어서 지문은 없을 거예요.”
바이 위탕은 고개를 끄덕이고 봉투를 건네 들었다.
“맞다, 형들은 왜 병원에 온 거예요? 조정한테 뭐 물어볼 거 있어요?”
백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아……, 아니.”
쟌 자오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우리는 다른 할 일이 있어서 왔어.”
“너는 우선 조정과 같이 있도록 해.”
바이 위탕이 말했다.
“두 번씩이나 네 목숨을 구한 은인이니까, 더 이상 어리광부리지 말고 잘 돌봐 줘.”
반박할 수 없는 그의 말에 백치는 창피한 듯 볼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발끝을 응시한 채 그는 한참 만에야 겨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할 일이 있다며 쟌 자오와 바이 위탕이 서둘러 자리를 뜨고 얼마 되지 않아 장용이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백치에게로 달려왔다.
“백치야, 공격받았다며?!?”
백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용이 형, 형이 어떻게 여기 있는 거예요?”
“아, 대장이 24시간 내내 널 지키라고 지시하셨어.”
그러더니 장용이 심히 의기양양한 얼굴로 백치의 어깨를 두드렸다.
“안심해, 안심해. 네 안전은 내가 책임진다!!”
백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요~ 원래부터 병원이 있었냐고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거예요?”
“아, 그게.”
장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난 이솜을 지키던 왕조랑 교대하려고 왔어. 조호는 제요와 천유 지키고 있고. 아, 천유 그 계집애는 진작 깨어났으니 걱정하지 마. 그리고 마한도 병원에…… 뭐, 걔는 부상 때문이니까.“
“마한 형이 다쳤어요?”
화들짝 놀란 백치가 소리쳤다.
“괜찮아요?!”
“괜찮아, 괜찮아!”
장용은 씩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리고는 백치 곁으로 한 발자국 다가오더니 마치 비밀을 이야기하듯 목소리를 낮추며 빠르게 속삭였다.
“초 미녀가 같이 있어. 이 자식은 진짜 여복도 많아!!”
병원 1층 입구.
볼품없는 지프 한 대가 병원 1층 주차장에 새워져 있었다. 다소 짙게 선팅된 차 안에는 쟌 자오와 바이 위탕이 모든 정신을 집중한 채 병원 입구를 응시하고 있었다.
“고양아, 그녀가 정말로 움직일까?”
바이 위탕이 입구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어쩔까나~~”
그러면서 쟌 자오는 바이 위탕을 향해 찡끗 윙크했다.
“이것이 그녀의 마지막 걸음이니깐, 만약 걷는다면 over야.”
“아~~~”
바이 위탕은 핸들 위에서 양손을 끼고 몸을 스윽 앞으로 내밀었다.
“빨리 좀 끝났으면 좋겠다~~ 내일모레면 크리스마스이브인데~~”
“갑자기 또 무슨 헛소리야!”
쟌 자오는 벌컥 화를 내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런 것 좀 생각 안 할 수 없어!”
“맞다.”
쟌 자오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채 바이 위탕은 씨디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우리 언제 시간 내서 이거 같이 보자.”
“뭔데?”
씨디를 건네받아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조혜가 빌려준 거야. 형이랑 공 선생의 몰카……라고.”
바이 위탕의 “라고”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격노한 쟌 자오의 손에서 씨디가 두 동강이 났다.
“안 돼~~~”
바이 위탕은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고양아, 그거 한 장뿐이라고~~ 아직 복사도 안 했는데~~~”
쟌 자오는 반으로 두 동강 난 씨디를 들고 바이 위탕의 얼굴 앞에 바싹 들이댔다.
“생쥐, 내가 말하는데 너 다시는 쌍둥이랑 어울리지 마. 그걸 동류합오(同流合污) 라고 하는 거야!!”
동류합오同流合污 :: 같이 흐르는 물은 함께 더렵혀진다는 뜻으로, 사람이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면 나쁜 일만 저지른다는 말.
바이 위탕은 울상을 지었다. 씨디로 뻗는 그의 손끝이 떨렸다.
“붙이면 다시 쓸 수 있을지도 몰라~~”
“내 말은 무시냐!!”
쟌 자오는 바이 위탕의 옷깃을 붙잡고 마구 흔들었다.
“넌 지금 미친 거야, 다시는 이딴 생각 하지……”
흔들고 흔들리던 두 사람의 동작이 동시에 멈췄다.
그들의 두 눈이 병원에서 나오는 한 그림자에 쏠렸다. --나타났다!
병원에서 나온 그녀가 택시에 올라타자 바이 위탕도 차에 시동을 걸고 택시의 뒤를 바싹 쫓았다.
“고양아,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 맞혀볼까?”
바이 위탕이 부지런히 택시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쟌 자오는 힐끗 그를 보고서 다시 택시로 시선을 돌렸다.
“마지막 원수를 찾으러 가는 거겠지~~”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계획의 마지막 단계야.”
“이게 두 번째 끈이야. 이렇게 되면, 그 해에 있었던 사건도 매듭지어지니까.”
그렇게 말한 바이 위탕은 피식 웃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조금만 있으면 진실을 알게 돼, 모든 걸 말이야!”
택시는 눈에 익은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바로 심 씨 그룹 건물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그 인물은 주위를 살피듯 두리번거리더니 자연스럽게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길 건너편에 차를 세운 바이 위탕과 쟌 자오는 어딘가로 전화를 한 뒤, 그 인물의 뒤를 따라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은 이른 새벽 시간,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런 주차장 한 가운데에 흰색의 BMW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운전석에 몸을 기댄 비딱한 자세로 담배를 태우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심잠이었다.
주차장으로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씩- 미소 지은 그는 담배를 바닥에 던져 구둣발로 비벼 껐다.
그리고는 자신 앞으로 다가온 인물을 향해 반갑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오랜만이야~ 이솜~”
“응.”
주차장의 어둠침침한 불빛을 통해 확인한 인물은 확실히 이솜이었다.
바이 위탕과 쟌 자오는 두 사람과 다소 떨어진 곳의 주차장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멀리 주차장 중앙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 한 구석이 따끔거렸다.
그건 오직 그들이 가진 인간 본성의 동정심 때문일 것이다.
이미 두 사람과 심잠에는 아까와 같은 광기와 흥분은 사라져 있었다.
한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심잠은 어찌 보면 상당히 태연해 보이는 것이, 바로 몇 시간 전에 사랑하는 동생을 잃은 사람의 얼굴로 보이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심플한 데림룩을 걸친 이솜의 얼굴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병원에서 심문할 때 보였던 반쯤 넋이 나갔던 얼굴은 아니었다.
“이제 우리 둘만 남았네, 그때의 관계자가 말이야!”
심잠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공성도 이미 잡혔어. 그럼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말이야, 너는 왜 살인자가 따로 있다고 말했을까?”
“그게 아니야.”
이솜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공성이 진진이랑 심영을 죽인 게 맞지만, 경요와 동명은 달라.”
“뭐?”
심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경요와 동명이 죽었어??”멀리서 듣고 있던 쟌 자와 바이 위탕의 두 눈이 마주쳤다.
그래, 그래서 아무리 기를 쓰고 찾아봐도 안경요와 동명을 찾을 수가 없던 거야~~
이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은 바로 당신이야~~”
“아~~”
심잠은 차갑게 웃었다.
“어떻게 나라고 확신하지? 거기에는 너도 있었잖아~~ 그러니 다음이 너 일지도 모르지.”
“그럴 수 없어.”
이솜은 고개를 저었다.
“왜냐하면 이솜은 이미 죽었거든. 그러니 이제 남은 건~~ 너뿐이야.”
그녀의 단정적인 말투에 심장은 당황했다.
………………“뭐?”
그는 차에 기댔던 몸을 곧추세우고 이솜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너 머리에 무슨 문제 있냐? 왜 이솜이 죽었다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하던 심잠은 일순 멈칫하더니 이어서 무언가 깨달은 듯 놀란 얼굴로 바뀌었다.
“너……너, 설마 이솜이 아니야?”
“아아~~”
이솜은 입가에 비웃음이 가득한 웃음을 띠었다.
“난 이솜이 아니야~~ 난 서가청(徐佳晴)이야.”
“서……서가청……”
심잠은 머리가 멍해졌다.
“서가려는……내 언니야~~”
그렇게 말한 서가청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다. 곧이어 화장이 지워진 얼굴 뒤로 상당히 어려 보이는 얼굴이 나타났다.
바이 위탕은 쟌 자오에게 눈짓했다. ——여자는 역시 무서운 동물이다!
“아아~~”
서가청의 등장에 당황한 것도 잠시, 심잠은 빠르게 냉정을 되찾았다.
그는 서가청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하하, 그래서 이제 날 죽이겠다고? 꿈도 꾸지 마!”
그는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서가청에게 겨누었다.
“여기서 죽는 사람은 바로 너야!”
“상관없어~~”
그녀는 전혀, 라고 해도 좋을 만큼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자세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가 태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죽든, 네가 죽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결국 넌 도망갈 수 없을 테니깐.”
“그게 무슨 소리야?”
“그 당시, 너희들은 탈의실에서 마약을 하다가 언니한테 들켰어. 언니가 밀고하면 모두 제명될 게 뻔했지. 그래서 너희들
은 마약에 취한 채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언니를 죽였어.
그리고는 당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던 마법 살인범의 수법을 따라 현장을 위조했지. 그럼 당신은? ……맞아, 당신은 학생이 아니었어. 하지만 당신은 그들의 마약 공급책이었지. 따지고 보면 당신 죄가 가장 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심잠이 소리쳤다. 그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서가청은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면서 메마른 어조로 말을 이었다.
“동명은 계속 죄책감에 시달렸어. 자주 언니 묘에 와서는 용서를 빌었지. 내가 묘비 뒤에 있는 것도 모르고 줄줄이 털어놓으면서 말이야. 너희 모두를 위해 참회하고, 언니의 용서를 빌어……”
“그 병신 새끼!”
심잠이 욕설을 내뱉었다.
“맞아, 그는 쓰레기야!”
서가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죽었어. 안경요랑 이솜은 멍청이라 죽였고, 장진진은 말도 못 하게 겁쟁이고, 공려평은 욕심이 끝도 없었지. 그래서 모두 죽였어~~ 그리고 넌 인간쓰레기야. 그러니 죽어야 해.”
말을 마친 그녀가 주머니에서 과도를 꺼내 들자, 심잠이 두 손으로 총을 움켜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 너 까불지 마! 칼이 총알보다 빠를 것 같아?!”
“만약 네가 총을 쏘면 경찰이 몰려올 거야~~ 근데 그거 알아? 난 지금 중요한 증인이라 내 뒤에는 언제나 경찰이 따라 와~~”
이솜은 칼을 내려다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이미 그해에 있던 일에 대해 다 써 놓았어. 병실의 베개 밑에다 놓고 왔으니까, 지금쯤 내가 없어진 걸 안 경찰들이
편지도 찾았겠지.
심 씨 그룹 총수의 살인이라~~ 헤로인을 팔아 그 돈으로 집 안을 일으킨 그가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 위해 십 대 아이를 죽이고, 자신을 위해서라면 친동생이 죽는 것조차 아까워하지 않아. ……정말 멋져, 죽음보다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게 당신한테 잘 맞겠는데?!”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밖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놀란 심잠의 눈이 휘둥그레지자, 서가청은 웃음을 터트렸다. 텅 빈 주차장 안에 그녀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말 빨리도 왔잖아!”
“씨발! 이 씨발 미친년!!”
욕설을 퍼부으며 심잠은 재빨리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안 좋아!”
쟌 자오가 낮게 소리쳤다.
심잠은 가속 페달을 밟으며 출구로 차 머리를 돌렸다.
출구 앞에는 서가청이 서 있었다.
“비켜!”
그렇게 외치며 심잠은 가속 페달을 밟았다. 차량은 서가청을 향해 똑바로 돌진했다.
서가청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차량 속 심잠을 똑바로 바라본 채, 마치 즐거운 일을 기다리듯 양팔 활짝 벌리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원한은, 원한으로 풀어야지~~~”
그녀의 목소리가 쟌 자오의 머릿속을 울렸다. 멍해진 그의 귓가로 한 발의 총성이 들렸다.
바이 위탕이 쏜 것이었다. 총알은 그대로 날아가 심잠의 차량 앞바퀴에 명중했다.
순식간에 밑으로 내려앉은 바퀴에 고속으로 달려오던 차는 한순간 균형을 잃고 빠르게 회전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미끄러지던 차는 결국 그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공중으로 튀어 올라 공중에서 몇 바퀴를 회전한 뒤 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졌다.
잠시 뒤, 주차장 안으로 경찰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서가청은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웃었다. 그녀는 경찰들이 다가올 때도, 자신의 양손에 수갑이 채워질 때도 가만히 있었다.
그녀가 순순히 끌려가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경찰들이 차 안의 심잠을 구출하기 위해 애썼다.
구출된 심잠은 상당히 크게 다친 듯 했다.
현장은 바이 위탕의 지휘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바이 위탕은 문득 쟌 자오를 돌아보았다.
쟌 자오가 넋이 나간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고양아……”
바이 위탕은 쟌 자오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나직이 말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그의 말에 쟌 자오는 고개를 들어 바이 위탕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혹시 너도 생각하고 있어?”
바이 위탕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한은, 원한으로 풀어야 한다] 아마도 이게 그 사람 스타일이겠지. 한마디로 사람을 마귀로 만들어서는……. ——어쩌면 이건 게임일지도 몰라.”
“중세 시대 영국에서는 ‘사냥꾼(围猎者)’이라는 오락이 있었어. 혹시 알고 있어?”
그렇게 물은 쟌 자오는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토끼, 늑대, 원숭이, 곰, 그리고 사형수까지……. 그들을 모두 한 곳에 몰아넣고는 하나가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 싸우게 했어. 그리고는……마지막에 살아남은 거로 그들의 등급을 매겼지.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하나였어. 상대가 무엇이든, 가장 높은 층에 서 있는 건 언제나 인간이었어. 그 어떤 동물보다 잔인한 게 인간이니까.“
쟌 자오의 말이 끝나자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바이 위탕은 손을 뻗어 그를 끌어당겼다.
쟌 자오를 자신의 가슴에 기대게 한 채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고양아,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러면 너무 쉽게 슬픔이 찾아올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아줘. 나는 네가 웃는 게 좋은걸.”
쟌 자오는 아무 말 없이 바이 위탕의 가슴에 몸을 기댄 채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목소리만이 모든 어둠을 뚫고 자신에게 광명을 찾아줄 것 같았다.
'덕공일치 > S.C.I. -Hold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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